'누군가를 사랑한다.'
과연 그 사랑을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운명에 이끌려 '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넘버를 들어보지 않은 뮤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이하 번점) 의 넘버는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그렇다.
(나도 입덕하고 제일 먼저 들었던 OST가 번점이었다.)
하지만 넘버만 유명하지, 정작 극 자체에 대한 언급은 적었던 것 같다.
물론 극을 보는 데 있어, 넘버도 중요한 요소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자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1막은 그저 풋풋한 학생들의 연애, 캠퍼스 로맨스 + 하이틴 로맨스다.
하지만..
2막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치관에 혼란이 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또 인우와 현빈의 사랑에 마음이 아파서 울고 있는 나를 보노라면.. 당황스럽다
그런데 또 극에 빠져서 눈물은 줄줄 나온다.
마지막 내레이션과 함께 인우와 현빈이 손을 잡고, 막이 내려가면
가슴에도 무언가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누군가 한번은 상상해볼 만한 사랑.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 하나만을 바라보는 사랑.
하지만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과연 사랑은 운명일까?
만약 운명이라면, 우리는 거부할 수 있을까?
운명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의 따가움을 이겨내고,
내가 갖고 있는 책임을 버리고, 비난을 얻고.
그것을 모두 버릴만큼 운명적인 사랑은 가치가 있을까?
아니,
인우의 사랑은 얼마나 커서,
태희의 사랑은 얼마나 슬퍼서,
현빈의 사랑은 얼마나 간절해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루지 못할 법한, 무대 위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 더 슬픈 게 아닐까.
1막은 인우와 태희, 현빈과 혜주의 사랑을 번갈아 보여준다.
물론, 연애를 하는 당사자들이 다른만큼, 그 사랑의 형태도 다르다.
아무래도 극 자체가 연식이 있다보니, '전형적인'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연애의 모습이다.
어리숙하지만 상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서툰 인우와
상대를 좋아하지만 짓궂은 장난으로 표현하는 현빈.
묵묵히 기다리고 조용해 보이지만, 자기 의사를 뚜렷하게 표현하는 태희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현빈의 마음만은 제대로 느끼는 혜주.
각기 다른 인물의, 각기 다른 사랑의 방식은, 우리의 인생 속 한 번은 봤을 법한 것이다.
그것이 나의 경험일수도 있고, 간접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한 번은 있었을 법한 사랑의 형태를 통해 극에 더 빠져들고, 이입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1막에서 인우와 태희의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운명적인 만남과 이끌림.
두 사람의 마음은 뜨겁지만, 그 표현은 미지근하다.
하지만 분명히 극을 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금방 식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기름을 부어 불타오르는 사랑이라기 보다, 마치 숯불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2막,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숯불 속 불씨를 발견하는 순간,
인우는 부채질을 시작한다.
과연 그 부채질이 옳은 것일까?
윤리적으로 본다면 인우와 현빈의 관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아무리 운명이라도 할 지라도, 그것은 두 사람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우는 20년 가까운 시간 자신의 인생을 쌓아 왔고,
현빈(태희)도 17년 동안 자신의 인생을 쌓아왔다.
그 안에서 각자 지켜야 할 규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것이 상관없다며,
자신들을 기억할 바람이 있는 곳에서, 떠난다.
이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
물론, 두 사람이 견뎌야 할 시선의 무게에 대한 걱정 때문일 수도 있고
진정 자신들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극을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들은?
숯불은 모두 꺼지고 난 후에도 그 잔재가 남는다.
잔재를 지킬 사람들, 바라볼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득 리뷰를 쓰다보니 드는 생각.
수없이 화면으로 마주하고
수없이 음성으로 들었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던 넘버.
그게 나의 전부란 걸.
(2018 번지점프를 하다 , 세로 라이브, 강필석-김지현)
https://www.youtube.com/watch?v=_8qmXFV-kpg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넘버! 이건 재연버전으로..
(2013 번지점프를 하다, 프레스콜, 이재균, 박란주, 성두섭, 전미도)
https://www.youtube.com/watch?v=yH9JUa4Zx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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