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은 아주 짧은 리뷰 영상이었다. 그냥 핫하다길래,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핫한가? 하고 틀기 시작한 영상.

구성은 총 8화다. 1화당 45분 가량의 러닝타임이 있지만, 뒷부분의 엔딩크레딧을 제한다면 실제로는 40분 가량으로 염두에 두면 된다. 

만약 보게 된다면, 저녁을 먹고 8시쯤 시작하면 새벽 3-4시쯤 끝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2.

하루동안 8화를 모두 본다면, 주인공 빌리에 대한 관점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빌리를 이해할 수도 없다가, 또 동정하게 되다가… 결말에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3.

빌리는 누구나 다 가질법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누구나 다 할 법한 행동을 하진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빌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만한 ─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동시에 학생으로서의 삶에 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수행했다. 잘 노는 전교 1등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시기였다. 빌리에게 10년 전의 그 시기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다. 조지아에서 City(뉴욕)으로 오면서 꿈꿨던 자유로운 도시인의 삶을 살았다. 심지어 사샤라는 끝내주는 동반자가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빌리는 내가 바랐던 빌리로 살았다. 어디서든 나를 갈망하는 열정 속에서 끝내주는 섹스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삶.

 

브래드는 찬란한 빌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빌리가 믿었던 사람이다. 빌리에게 갖고 있는 욕망을 장소나 시간에 상관없이 표현하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 브래드와의 일상은 빌리의 환상을 채워주었으나, 결코 빌리가 원하는 안정감을 줄 순 없었다. 브래드는 아찔함만큼 빌리는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 빌리는 자신을 갉아먹어가며 아찔함을 감내하며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빌리가 참아가고 있을 동안, 브래드는 끊임없이 회피했다. 하지만 원치 않는 현실을 회피할 수 없고 직면하게 되었을 때, 브래드는 빌리를 밀어낸다. 그렇게 화려한 빌리의 순간이 막을 내렸다.

 

 

4.

빌리는 도시 외곽 -코네니컷- 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써, 가정적인 배우자를 가진 여성이 되었다.

 

폭풍 같았던 지난 과거, 폭풍 속의 나룻배와 같은 삶을 살던 빌리는 크루즈선처럼 화려하고 안정적인 쿠퍼에게 끌린다. 누구나 "이상적이다."라고 말할 법한 삶을 산다. 본인 또한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안정적이라는 것은 동시에 큰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과거의 뜨거움은 이제 뜨뜨미지근해졌다. 

 

빌리는 언제나 뜨거운 사람이었으며, 뜨거움 속에서 가치를 찾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빌리는 다시 뜨거움을 갈구한다. 하지만 적어도, 빌리는 그 배 안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그러나 빌리는 어느 순간 그 경계를 넘는다. 쿠퍼는 경계에 서있는 빌리를 어떻게든 배 안으로 끌어내려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뜨거움을 매력을 알아 버린다.

 

그렇게 쿠퍼와 빌리, 부부는 배 안에서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 뜨거움으로 뛰어갈 준비를 하고 살아간다.

 

 

5.

사실 줄거리를 적든, 뭘하든 정리를 하고 싶었는데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6.

빌리는 기존의 가부장적 사회의 가치에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자 한다. 그녀는 케이크 가게로 바뀐 문신가게 ─ 자신과 브래드의 추억이 있는─ 를 보며 오열한다. 마치 10년 전, 자신의 찬란한 과거마저 사라진 느낌 때문일 것이다. 10년 전의 자신은 생각치도 못했으며, 아마 슬퍼할 것이라는 말에서 현재의 삶을 바라보는 빌리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혹자는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첫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빌리를 표현하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빌리는 본인이 선택했지만, 결코 과거의 자신은 생각하지 않았던 따분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이 작품 내에서 사샤나 다른 엄마들이 말하는 것처럼 '겪어야만 하는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하지만 빌리는 자신은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주장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누군가는 빌리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빌리는 시종일관 '난 너네와는 달라!'라는 것을 표현한다. ─사실 X남친과 남편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대상이란 것부터 남다르긴 하지만─ 그런데, 잘못하면 그것이 일종의 선민의식처럼 드러남으로써 불편함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생각이나 말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빌리는 꾸준히 자신의 특별함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특별하지 않은 삶은 없다. 하지만 빌리는 그 특별함에 매몰되어 자신이 해야하는 것을 잊었으며, 말도 안되는 고집이 계속된다. 그 고집이 시청자의 등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7.

이 작품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작품 빌리의 사고 방식이었다.

 

난 내 가정이 좋아, 쿠퍼 사랑해 → 그런데 브래드의 짜릿함이 끌려 → 아냐 지금과 같은 삶을 포기할 순 없어 → 너무 내가 한심해!! → 짜릿함이 찾고싶어, 브래드! → 아냐, 난 내 가정이 소중해, 쿠퍼만한 사람은 없지 … 반복 ….

 

도대체 어쩌라는 걸까. 

 

 

8.

만약, 혹자가 보고 싶다고 한다면 난 8화까지만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 이후는 정말 보면 복장만 터진다. 물론 내가 미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론은 진짜…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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